[과학이지!] 60년 전 오늘, 인류 최초의 우주 비행사 탄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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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지!] 60년 전 오늘, 인류 최초의 우주 비행사 탄생하다
  • 곽도훈 기자
  • 승인 2021.04.13 22: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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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합성/김수정 기자
사진 합성/김수정 기자

“지평선이 보인다. 하늘은 검고 지구의 둘레에 아름다운 푸른색 섬광이 비친다.”

1961년 4월 12일. 소련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은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우주 밖으로 나가는데 성공했다. 마침내 인류가 우주를 향한 첫 발을 내딛은 것이다. 지구 밖에서 지구를 바라본 유리 가가린은 “우주는 매우 어둡지만 지구는 아주 푸르다”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2021년 4월 12일(현지시간)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있는 러시아 우주비행사들은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해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 60주년을 자축했다.

영상에서 러시아 우주비행사 세르게이 쿠디스베르츠코프는 유리 가가린이 인류의 우주 비행 역사의 시작이라며 자부심과 존경심을 드러냈다.

가가린은 어떻게 인류 최초의 우주 비행사가 된 것일까?


노동자 계급에 157cm의 작은 키...위기가 기회로


유년 시절 의자에 앉아있는 유리 가가린
유년 시절 의자에 앉아있는 유리 가가린

유리 가가린은 1934년 3월 9일 소련 스몰렌스크주 근처 시골마을의 농장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목수, 어머니는 목장 노동자로 소 젖 짜는 일을 했다. 순수한 노동자 계급 출신인 것이다. 유리는 2차 대전이 끝난 뒤부터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비행조종사의 꿈을 가지게 됐다.

학교를 다니면서 꾸준히 공부해 인근 항공연구소에서 비행기 조종을 배우던 가가린은 1955년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한다. 하지만 가가린은 키가 157cm로 매우 작아 2인용 훈련기 착륙을 잘 하지 못해서 퇴교 위기에 놓였는데 연대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지막으로 착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 때 가가린의 교관이 좌석에 쿠션을 깔아줘 시야가 확보됐고 멋지게 착륙에 성공하면서 무사히 졸업, 중위로 임관에 성공한다.

1959년 가가린은 비행시간 256시간을 달성, 상위로 진급했고 우주 비행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마침 상사였던 바부슈킨 중령의 지원으로 마침내 우주인 선발 프로그램에 통과한다.

유리 가가린이 우주비행사로 선발되는 데에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먼저 경쟁자들의 존재였다. 심사 당시 알렉세이 레오노프, 게르만 티토프 등의 후보가 있었고 이들은 뛰어난 경쟁자였다. 심지어 가가린은 노동자 출신이라 줄을 대기도 어려운 상황, 소련이라는 나라의 특성상 당연히 정치적인 상황도 고려 대상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유리 가가린은 평민 노동자 계층이라는 점에서 점수를 얻었는데 정부 입장에서 평범한 노동자 집안의 아들이 미국이라는 자본주의 국가를 이긴다면 체제 선전에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마침 우주비행사로서의 유리 가가린의 능력도 뛰어난 편이었기에 가가린으로 최종 선정됐다.

가가린이 키가 작은 점도 한 몫 했다. 가가린은 키가 157cm로 매우 작았는데 공군 조종사가 될 때는 걸림돌이었던 이 키가 우주비행사가 되는 데에는 도움이 됐다. 당시 우주개발은 소련 우주개발의 아버지로 불리는 세르게이 코롤료프가 주도했는데 코롤료프는 우주비행사의 조건으로 170cm보다 작은 키와 72kg을 넘지 않는 체중을 요구했다. 가가린은 이 조건에 매우 적합했고 마침내 게르만 티토프와 함께 최종 선발됐다.


"지구는 매우 푸르다"···'역사적인 날' 여유롭게 휘파람도


보스토크1호에 탑승한 유리 가가린
보스토크1호에 탑승한 유리 가가린

1961년 4월 12일 보스토크1호를 타고 역사적인 비행에 나선 유리 가가린은 인류 최초로 우주 밖으로 나가는데 성공한다. 비행 당시 유리의 콜사인(호출명)은 'Kedr(히말라야 삼목)'이었다.

처음 나가본 우주에 긴장되고 떨릴 법도 하지만 유리 가가린은 '조국은 듣는다고, 조국은 안다, 그의 아들이 어느 곳을 날고 있는지(Родина слышит, Родина знает)'라는 노래를 휘파람으로 부를 정도로 여유가 넘쳤다.

1시간 48분동안 지구를 감상하며 자신의 몸 상태와 우주선 상태를 알리던 가가린은 지구를 한 바퀴 돈 다음 아프리카 상공에서 보스토크1호의 역추진 로켓을 점화, 우주선 속도를 줄이고 귀환캡슐과 기계선을 분리했다. 이 과정에서 분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위기를 맞는가 싶었지만 이내 분리에 성공했고 예상 착륙지점에서 꽤 떨어진 곳이지만 무사히 착륙에 성공했다. 귀환에 성공했지만 당시에는 통신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가가린은 소련 기지국과 통신하기 위해 한참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귀환에 성공한 보스토크1호
귀환에 성공한 보스토크1호

이 일로 유리 가가린은 상위에서 소령으로 2계급 특진했는데 다녀와서 칭찬의 의미로 진급한 게 아니라 보스토크1호가 출발함과 동시에 진급했다. 소련에서도 우주비행이 성공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 유리 가가린을 전사자로서 대우한 것이다. 물론 무사히 살아돌아왔다고 해서 진급을 무를 것은 아니기에 2계급 특진은 그대로 적용됐다. 이후 가가린은 전 세계적인 영웅이 됐고 각종 훈장에 포상을 받아 대령까지 초고속 진급했다.

귀환 직후 환영 인파 속 유리 가가린
귀환 직후 환영 인파 속 유리 가가린

유리 가가린은 세계적인 영웅이면서 소련의 상징처럼 됐는데 그의 죽음을 우려한 정부의 방침에 따라 더 이상 우주 비행에 직접 나서지는 않았다.

단지 우주비행사 훈련센터 부센터장을 맡아 후배 우주 비행사 양성에 힘쓰는데 한동안 비행을 하지 못해 전투조종사 자격증이 정지됐었다. 몸이 근질근질해 조종사 자격증이라도 회복하고 싶었던 유리 가가린은 1968년 3월 27일 미코얀구레비치 MiG-15의 시험 비행 훈련에 나섰으나 훈련 도중 사고로 사망한다. 나이는 34세. 계급은 대령이었다. 사망 뒤 순직 처리돼 1계급 특진하면서 장군(소장)으로 추서된다. 시신은 소련의 영웅들1이 묻혔던 크렘린 벽 묘지에 안장됐다.


우주 기술 발전에 지대한 영향 끼친 보스토크1호


달에 착륙한 닐 암스트롱
달에 착륙한 닐 암스트롱

보스토크1호의 성공은 이후 우주 개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가장 큰 업적은 인간이 무중력 환경과 초고속 비행 환경을 버틸 수 있다는 점이었다.

또 그로부터 8년 뒤 소련의 성공에 자극받은 미국이 인류 최초로 우주 비행사 닐 암스트롱을  달에 보내는데 성공한다.

만약 보스토크1호의 성공이 없었다면 미국은 무리해서 막대한 비용에 비해 실익이 없던 달 착륙 ‘아폴로 계획’을 밀어 붙이지 않았을 것이고 달 착륙은 1990년대나 2000년대에 들어서나 가능했을 것이다. 그렇게 됐다면 우주 개발 기술이 지금보다 현저히 뒤처졌을 것이라는 점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후 우주에서 장기간 생활할 수 있는 우주정거장도 발사됐고 최근에는 민간 우주기업인 '스페이스X' 등도 생겨날 정도로 우주 기술이 발달했다.

곽도훈 기자 kwakd@e-foc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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