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의지의 한국인·체력은 국력' 일동제약 80년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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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의지의 한국인·체력은 국력' 일동제약 80년 스토리
  • 곽도훈 기자
  • 승인 2021.05.26 15:3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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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의 한국인! 체력은 국력! 이 말 어디서 나왔는지 아시는분 손 한 번?

1941년 암울했던 식민통치 시절. 당시 일본은 민족말살 정책을 펼치며 우리나라 자본들을 마구 가져갔죠. 이런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한 남자가 회사를 설립하고 사세 확장에까지 성공했는데요.

경성약학전문학교(서울대 약대 전신) 2회 졸업생이자 삼양공사를 경영하던 윤용구 회장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윤 회장은 일제강점기 아파도 약을 먹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며 직접 의약품을 개발해 보급하겠다는 마음을 먹는데요. 당시 홍진산이라는 해열제를 개발해내는데 성공합니다. 이후 1941년 극동제약을 설립하고 이듬해 5월에 일동제약으로 상호를 바꾼 뒤 일제의 기업정비령(기업정비령은 휴업 상태에 빠진 한국인 기업을 강제로 해산하거나 일본 기업에 흡수시키는 일제의 수작) 대상이었던 5개 군소제약사를 인수하는데요. 자칫 사라질뻔 했던 기업들을 구하고 회사 규모까지 키우는 결정이었죠.

얼마 지나지 않아 드디어. 해방을 맞이하게 됐지만 38선 이남으로 미군이 들어오면서 다양한 최신 의약품들도 들어왔고 거대 자본이 생산한 최신 의약품 앞에서 영세 수준에 불과하던 국내 제약업계는 고전을 면치 못했죠.

여기서 일동제약은 어떻게 했을까요? 윤 회장은 예전에 느꼈던 그 절박함을 잊지 않고 신설동 사옥으로 이동한 뒤 홍진산 등의 생산에 집중하죠.

전쟁을 겪으면서도 의약품 개발에 포기하지 않던 일동제약은 마침내 1958년 국내 최초의 유산균제, 그 유명한 유산균 비오비타를 개발하는데 성공합니다. 이후 성공을 거듭하던 일동제약은 1963년 또 한 번의 역사적를 쓰는데요. 역시 국내 최초로 활성 지속성 비타민 아로나민을 개발해냅니다. 당시 국내 제약업계 상황은 외국 선진제약기업과 기술제휴를 맺기 위해 노력하던 그런 상황이었는데요. 일동제약은 무조건. 독자적으로 연구를 펼치게 됐고 그 결과로 이러한 것들을 개발해낸 것이죠.

의약품 원료를 대부분 해외에 의존했던 국내 제약업계에 '주원료는 자가 생산으로'라는 새로운 풍토를 조성하는 계기를 만든 점을 인정받아 1964년 제1회 발명의 날 시상식에서 영예의 보사부장관상을 수상합니다.

여러분 혹시 '의지의 한국인', '체력은 국력' 이런 유행어들이 요즘에도 쓰이고 있죠? 이 말이 어디서 유래한 지 아세요? 이 광고에 대한 재밌는 일화가 있던데요. 1966년 윤용구 회장은 한국 권투의 시초격인 김기수 선수가 세계 주니어 미들급 선수권전에 도전한다는 소식을 듣고 아로나민 광고의 라운드 보드를 카메라에 잡히도록 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경기 날짜도 공교롭게도 6월25일. 심지어 1.4후퇴 때 피난 내려온 김기수였기에 더욱 의미가 깊었죠. 그러나 한국에서는 처음 열리는 중량급 세계 타이틀 매치라 스폰서 비용이 감당하기 힘든 정도의 수준이었는데요. 경기 결과에 회사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해도 될 정도로 말 그대로 모험을 한 셈이죠. 어떻게 됐을까요? 이탈리아 출신 세계 챔피언 니노 벤베누티를 상대로 15회전까지 간 치열한 접전 끝에 김기수는 승리했고 다음날 조간신문에는 김 선수의 승리 소식과 “승리! 아로나민 효과”라는 광고가 실리게 됩니다. 가난하고 약해 울분이 쌓여있던 한국이 세계를 상대로 당당하게 이겨낸 감동적인 순간에 아로나민이 큰 역할을 했고 전 국민들의 사랑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됐죠.

체력은 국력 슬로건 역시 이때 만들어졌는데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 말을 엄청 좋아해서 유명해졌죠. 70년대 초반엔 묵묵히 일하는 숨은 일꾼들을 소개하는 의지의 한국인 시리즈가 완성됐고요.

어느정도 국내 기반을 마련했으니 그래도 선진 기술을 습득해와 더 많은 의약품을 만들어야겠다고 판단한 일동제약은 미국 와이어스사와 기술제휴를 맺게 되는데요. 이때도 생산 노하우만 전수받고 모든 생산공정을 자체기술로 해결합니다.

이렇게 잘나가던 일동제약이었음에도 회사분위기는 매우 화목했습니다. 윤 회장은 절대 독단으로 결정하는 법이 없고 관계자들과 회의를 거쳐 채용, 업무 등을 결정했고요. 사원들에게 간섭하기보다 자율에 맡겼죠. 말단 사원에게조차 고개 숙여 인사했다고 하니 됨됨이를 알 수 있죠.

심지어 흔한 전용차 한 대 없었다고 하는데요. 아로나민 출시 후에야 지프차 한 대를 마련했는데 그 역시 직원들이 급한 일에 사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윤 회장의 이러한 성품은 지금의 일동제약 기업문화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합니다.

직원들 복지에도 역시 신경을 많이 쓰셨는데요. 주 5일제를 공식적으로 시행했다고 합니다. 일요일도 공휴일도 제대로 없던 그때 주 5일제라니 신기한데요. 1969년에 일본 시찰을 다녀왔다가 주5일제에 대한 내용을 듣고는 검토하다가 1973년 석유파동이 터졌을 때 바로 시행해버렸다고 하네요. 이를 과감하게 추진했던게 윤용구 회장의 아들 윤원영 사장(현 회장)이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엄청 좋은 결과를 낳았고 점점 다른 기업들도 따라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그러니까 제가 지금 토요일에 쉴 수 있는게 일동제약 덕분인거죠?

이런 일동제약이 어느덧 창립 80주년을 맞았다고 합니다. 

작지만 '의약품의 근본은 사람이다' 이런 창업이념을 가지고 설립된 일동제약은 어느덧 매출 5천억이 넘는 중견기업이 됐고, 윤용구 회장의 뜻을 이어받아 윤웅섭 대표는 연구개발비로 꾸준히 매출액 10% 전후를 들여 여전히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해 노력 중이라고 합니다.

의지의 한국인을 말 그대로 잘 보여준 일동제약 스토리였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보시려면 영상을 클릭하세요)

곽도훈 기자 kwakd@e-foc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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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만 2021-05-27 02:13:55
항상 글 잘 보고 있습니다~ 여러 좋은 기업이 있죠 유한양행에 대한 글도 하나 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