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로 보는 오늘] 1990년 여의도 회동으로 이뤄낸 '증안기금' 창립
상태바
[경제로 보는 오늘] 1990년 여의도 회동으로 이뤄낸 '증안기금' 창립
  • 김지수 기자
  • 승인 2021.05.04 20: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래픽/김수정 기자
그래픽/김수정 기자

'경제로 보는 오늘'은 과거 오늘 일어난 경제 사건을 중심으로 풀어 드리는 뉴스입니다.


1990년 오늘(5월 4일). 여의도에서는 2조원 규모의 증권시장안정기금총회가 열렸다.

당시 증권사는 물론 은행·보험·상장사까지 포함해 636개사가 4조8600억원을 모았다. 최악의 시장상황에 증안기금은 부양책의 핵심을 상징으로 급하게 출범했다.

<증안기금: 주가 폭락 시에 주식 매입, 과열 시 보유 주식 매도하여 주식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설립한 기금>

이 증안기금은 1960년대 초 증시 침체의 늪에 빠진 일본 사례를 벤치마킹했다. 당시 일본은 일본공동증권과 증권보유조합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주식을 대거 매입, 주가 상승을 유도했다. 

우리나라에서 증안기금은 효과를 거뒀을까?

당시 증권가에서 증안기금은 1990년대 초반 증시 폭락의 위기를 벗어나게 해줬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와 정부의 개입장치였다는 평가가 상존했다. 실제로 증안기금의 매매동향에 따라 시장이 춤춘 적도 많았다.

사람들은 주가가 떨어질 대로 떨어졌으니 이제는 올라갈 것이란 기대감으로 투자에 매달렸다. 신용으로 매수한 주식은 신용만기가 다가오면 매도 압력으로 오히려 주가를 하락시키는 요인이 됐다. 이로 인한 주가 하락은 다시 융자 담보비율의 부족을 일으켜 반대매매를 불러일으키고 반대매매는 또 다시 주가하락을 불러 일으키는 악순환을 반복했다.

<반대 매매: 고객이 증권사의 돈을 빌리거나 신용융자금으로 주식을 매입하고 난 후, 빌린 돈을 약정한 만기기간 내에 변제하지 못할 경우 고객의 의사와 관계없이 주식을 강제로 처분하는 매매>

증안기금은 본격적인 대세 상승기에 접어들자 이를 매각하면서 해산한 바 있다.

하지만 해체는 쉽지 않았다. 3년 뒤 해산 예정이었으나 조합원 간의 이해대립으로 완전 청산은 20년이 지난 후에야 이뤄졌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증안기금은 사라졌지만 주가가 대량으로 빠질 때마다 다시 결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국내외에서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증안기금, 다시 필요해질 때가 올까?

김지수 기자 jisukim@e-focus.co.kr

김지수 기자
김지수 기자 다른기사 보기

뉴스본부/ 뉴스취재팀 김지수 기자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